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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 움베르토 에코, 그리고… 한강!

출처: 문학동네
안녕하세요, 에디터 땅콩입니다. 얼마 전 한국 문학계에 전해진 반가운 소식을 들으셨나요? 한강 작가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가 메디치 외국문학상을 받았죠! 프랑스 4대 문학상 중 하나인 메디치 상은 밀란 쿤데라, 움베르토 에코 등 우리에게 익숙한 작가들도 거쳐 간 상인데요, 한국 작가가 수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네요.
겨울이 성큼 다가온 지금에 더욱 어울리는 책이라 이번 기회에 다시 읽어보았는데 역시 좋더라고요. 이 책의 어떤 점이 프랑스 문학상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살펴본 후, 전혀 다른 듯하면서도 매우 닮은 최진영 작가의 신간, <단 한 사람>도 같이 소개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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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분께 효과적이에요
역사적 사실보다 마음에 더 집중해 보고 싶은 분
문학이 가지는 모호함과 생생함을 좋아하는 분
이런 분께 효과적이에요
현실 속의 신화 같은 이야기를 읽고 싶은 분
짧고 깔끔하되 단어가 섬세한 문장을 좋아하는 분

과거와, 아픔과, 사람과, <작별하지 않는다>

귀로 듣고 눈으로 그리는 옛날이야기
주인공 경하는 5.18 민주화 운동에 관한 소설을 쓴 뒤부터 그 현장으로 들어간 듯한 악몽에 시달려요. 그러던 어느 날, 제주도에 살던 친구 인선이 손가락을 다쳐 서울에 입원했다는 연락을 받고 오랜만에 인선을 만납니다.
그리고 인선의 간절한 부탁을 받아 인선의 집이 있는 제주도로 향하는데요. 그곳에서 인선이 조사한 자료들, 그리고 인선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들이 합쳐지며 인선의 부모님이, 그리고 제주 사람들이 겪었던 비극이 경하의 머릿속에 그려지기 시작해요.
예나 지금이나, 이 세상 어디에서든
경하는 5.18 민주화 운동을 알아보다가 제주 4.3사건에게로 흘러 들어가요. 각기 다른 사건인데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다니 참 신기하죠.
하지만 생각해 보면, 두 사건이 별개의 사건이면서도 같은 아픔을 공유하기 때문에 이런 신기한 일이 일어난 것 같아요. 두 사건뿐이 아니라, 헤어짐이 있는 모든 일이 같은 아픔을 품었을 거예요. 그리고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있는 곳에는 항상 헤어짐이 존재하죠.
만남에서 비롯한 사랑, 헤어짐에서 오는 고통을 이해하지 못할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켜켜이 쌓인 과거와 현재를 수시로 오가는데도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어렵지 않은 이유, 또 한국의 역사를 소재로 하는데도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이유가 여기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1948년의 제주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더라도, 헤어짐이 무엇인지만 안다면 공감할 수 있을 테니까요.
작별하지 않는 마음
‘작별하지 않는다’는 책의 제목이기도 하지만, 작중에서 경하가 악몽을 떨쳐내기 위해 계획한 영상화 프로젝트의 이름이기도 해요. 악몽 속 장면을 영상으로 만들면 극복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
작별하지 않는다는 게 대체 무슨 뜻일지 점점 더 궁금해지죠. 저는 인선이 자신의 다친 손가락을 봉합하는 과정 또한 ‘작별하지 않는’ 행동처럼 보였어요.
봉합 부위에 딱지가 앉으면 안 된대. 계속 피가 흐르고 내가 통증을 느껴야 한대. 안 그러면 잘린 신경 위쪽이 죽어버린다고 했어. (…) 지금은 물론 손가락을 지키는 편의 통증이 더 강하지만, 손가락을 포기할 경우 통증은 손쓸 수 없이 평생 계속될 거라고. (작별하지 않는다, p.42)
잘린 손가락을 연결하기 위해서 겪는 고통은 끔찍해요. 하지만 그대로 잘라내 버린다면 평생 환지통을 달고 살아야 하죠. 그래서 인선은 작별하지 않아요. 저자는 사람과의 헤어짐도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 걸까요?
이렇게 마셔보세요
무엇이 꿈이고 무엇이 현실인지 견주어 보며 읽어도 재밌지만, 굳이 그 구분에 얽매일 필요는 없어요.
제주 방언이 익숙하지 않아 진도가 더딜 때는 소리 내 읽어보세요. 구어로 생각하면 더 잘 읽혀요.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고 지극한 사랑과 작별에 대해서 더 읽어보고 싶은 분께는, 최진영 작가의 소설 <단 한 사람>을 추천해요.

많고 많은 이 중에 딱 한 명만 살릴 수 있다면, <단 한 사람>

단 한 사람’밖에’, 혹은 단 한 사람’이나’
반쯤 찬 물컵을 보고 하는 생각이 사람마다 다르다고들 하죠. 어떤 사람은 반밖에 안 남았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반이나 남았다고도 한대요. 구독자님은 어느 쪽에 속하나요?
<단 한 사람>에도 비슷한 시각의 차이가 나와요.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끔찍하도록 생생한 꿈을 꾸기 시작한 주인공 목화. 목화는 무더기의 사람중에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명만을 구할 수 있어요.
끔찍하도록 생생한 꿈인 줄 알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알게 돼요. 꿈속에서 죽도록 내버려 둔 사람은 현실에서도 죽었고, 꿈속에서 살린 사람은 현실에서도 살아남거든요.
하나의 삶을 구했지만, 동시에 수많은 죽음을 보아야 했던 목화는 단 한 사람밖에 구하지 못한 걸까요, 아니면 단 한 사람이나 구한 걸까요?
꿈과 나무와 사랑
먼저 소개한 <작별하지 않는다>와 두 번째 책 <단 한 사람>은 전혀 다른 줄거리를 가지면서도 몇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어요.
첫째로는, 꿈과 나무가 매개로 등장한다는 점이에요. 두 소설에서 말하는 꿈과 현실이, 그리고 나무와 인간이 대립하지 않으면서도 서로 마주 보고 서 있는 듯해요.
반대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듯하면서도 어딘가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서로의 그림자인 것 같기도 하네요. 죽음과 삶의 관계 또한 이와 같은 구도로 그린다고 느꼈어요.
두 번째 공통점은, 분홍빛도 아니고 달콤하지도 않지만, 분명 사랑을 이야기하는 책이란 거예요. 이 두 소설은 아픔에 관해서 이야기하면서 자연스럽게 그 이면에 있는 사랑을 보여주거든요.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는 건 신에게 구걸할 일이 늘어난다는 것. 목화는 아무도 사랑하고 싶지 않았다. (단 한 사람, p.125)
한강 작가는 수상 소감을 밝힐 때 작별하지 않는 마음을 ‘닿고 싶은 마음이 끝없는 사랑’으로 설명했는데, 알쏭달쏭한 말이지만 책을 읽으신다면 이 말에 공감하실 거예요. 그리고 이 말을 듣고 나니 최진영 작가가 <단 한 사람>을 통해 하고픈 이야기도 더욱 이해가 가더라고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우리
단 한 사람밖에 구하지 못한 것인지, 단 한 사람이나 구할 수 있었던 것인지에 관한 고민은 책 전체에 걸쳐 이어집니다. 목화의 할머니부터 시작해 3대에 걸쳐 이어지는 고민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면 나오는 답이 있어요. 단 한 사람’밖에’도 아니고, 단 한 사람’이나’도 아니고, ‘세상에 단 하나’ 있는 바로 그 사람을 구했다는 것을 알게 되거든요. 우리는 세상에 단 하나뿐이니까요.
이렇게 마셔보세요
같은 경험을 다르게 받아들이는 세 사람의 차이점에 집중해 보세요.
책을 다 읽고 난 뒤 처음으로 돌아가 프롤로그만 다시 읽어보면 새로운 감상이 든답니다.
세 번째 해독레터, 어떻게 읽으셨나요? 해독레터가 구독자님들의 도파민 해독을 돕고 있을지 궁금하네요. 사실 저한테는 해독레터가 나름 효과적인 것 같거든요! 해독레터를 쓰기 위해 책을 읽고, 또 일부러 책과 관련된 생각을 많이 하려고 애쓰면서 도파민 해독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중입니다. 구독자님의 일상에도 이처럼 소소한 변화가 찾아오길 바라면서, 다음 주에 또 찾아올게요. 그럼 이제 핸드폰은 내려놓고,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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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5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