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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갈 곳을 잃은 사람들, 이방인의 삶

출처: AP
안녕하세요, 에디터 땅콩입니다. 현재 전 세계인의 이목이 가장 모여있는 장소를 한 곳 뽑으라고 하면 가자지구가 분명 그 후보에 들 테죠. 일주일간 아슬아슬하게 이어지던 이스라엘과 무장단체 하마스의 휴전이 지난 1일 결국 종료되었는데요, 휴전 기간에 포함되어 있던 11월 29일은 국제 팔레스타인 연대의 날이기도 했습니다.
이에 맞춰 29일부터 이달 5일까지 국제 팔레스타인 읽기 주간이 이어지며, 국내 관련 단체에서도 도서 목록을 추천하며 활동을 독려했다고 하네요. 한발 늦었지만 세상을 향한 관심은 항상 필요하니까요, 이번 해독레터에서도 관련 도서를 가져와 보았어요.
무리드 바르구티의 <나는 라말라를 보았다>는 고향 팔레스타인에서 추방당해 30여 년간 해외를 떠돌아야 했던 시인의 기록이에요. 정치적인 이야기도 어쩔 수 없이 포함되었지만, 그보다는 한 사람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그래서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이 비극이 개개인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더 사적으로 지켜볼 수 있는 책이죠. 난민이 되어버린 바르구티의 이야기를 읽은 후에는, 김광기 교수의 <이방인의 사회학>을 읽으며 인간에게 고향이 어떤 의미인지 고민해 보려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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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해독 주스 성분표
#수필 #팔레스타인 #추방자
이런 분께 효과적이에요
팔레스타인의 역사가 궁금하지만 너무 정치적인 이야기는 부담스러운 분
난민에게 고향이 가지는 의미에 관해 생각해 보고 싶은 분
이런 분께 효과적이에요
때때로 찾아오는 외로움을 그만 느끼고 싶은 분
가벼운 사회학 도서에 도전해 보고 싶은 분

고향을 잃어버린 자, <나는 라말라를 보았다>

추방 당한 시인의 귀향 기록
추방은 죽음과 같다. 그런 일은 남들에게나 일어나는 거라고, 다들 그렇게 생각한다. 67년 여름에 나는, 나 자신도 남들에게나 일어나는 일이라고 늘 생각했던, 추방된 떠돌이가 되었다. (나는 라말라를 보았다, p.16)
저자 무리드 바르구티가 이집트 카이로에서 유학하던 시절, 제3차 중동 전쟁이 일어났어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을 점령하며 바르구티는 그렇게 고향 라말라에서 추방당했죠. 고향을 떠난 청년은, 자신의 아들이 청년으로 자라날 때까지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일시 귀국을 허락받고 30년 만에 고향을 방문해요.
30년 만에 다시 찾은 고향
책은 귀향 직전, 라말라로 건너가는 작은 다리 하나만을 앞둔 시점에서 시작해요. 어렵게 받은 체류 허가가 번복될까 긴장하며 대기하다가 드디어 라말라로 들어가죠.
나는 이집트의 대학 친구들에게 팔레스타인은 나무와 덤불과 야생화로 덮여 있는 푸른 땅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런데 저 언덕들, 헐벗은 바위산은 무엇인가? 내가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해온 셈인가? (나는 라말라를 보았다, p.48)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하물며 역사의 바람을 정통으로 맞으며 삼십 년이 지난 라말라는 어떻겠어요. 익숙한 듯 낯선 사람들과 낯선 듯 익숙한 장소를 만끽하는 바르구티의 마음속엔 설렘만큼이나 두려움도 가득합니다. 라말라에 돌아온 짧은 기간 동안 저자는 여전한, 혹은 전혀 달라진 풍경을 보며 지난날의 추억에 잠기기도 하는데요, 그 추억을 구성하는 것은 모두 사람이에요.
고향을 채우는 사람
사람, 고향이 소중한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사람이겠죠. 제3차 중동 전쟁으로 안 그래도 뿔뿔이 흩어져 있던 가족은 더욱 만나기 힘들어졌고, 오래 알고 지내던 이웃들의 소식도 알음알음 전해 들을 뿐입니다. 서로의 기쁨은 물론이고 서로의 슬픔도 함께하지 못해 안타깝죠. 시끄럽게 울리는 전화벨 소리를 들으며 이번에는 어떤 비보일지 상상 아닌 상상을 해요.
저자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또 다른 점은 고향에 같이 돌아와야 했을 사람이 없어졌다는 점인 것 같아요. 가족의 기둥이었던 큰형이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거든요. 큰형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검은 액자 하나가 대신 앉아있어요. 저자는 고향에 돌아왔지만 큰형이 있는 고향에는 돌아오지 못했죠.
하지만 있어야 할 사람이 없는 고향, 알던 사람이 없는 고향일지라도, 그곳을 채우는 것은 또다시 사람이에요. 자신의 시를 낭송하는 자리에 간 저자는 청중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합니다.
“고향에 돌아와서 지금까지 본 것 중에 가장 아름다웠던 것은 뭔가요?” 나는 곧바로 진심을 담아 이렇게 답했다. “당신들의 얼굴입니다.” (나는 라말라를 보았다, p.118)
이렇게 마셔보세요
생소한 이름이나 명칭이 많이 등장하지만 주석이 꼼꼼히 달려 있기도 하고, 다 기억해야 하는 것도 아니니 부담 없이 페이지를 넘겨도 돼요.
사실적인 동시에 시적인 저자의 표현을 따라 풍경과 감정을 상상하며 읽어 보세요.
바르구티는 고향 라말라에서도 쫓겨났지만, 두 번째 고향이 될 뻔했던 이집트 카이로에서도 추방당해요. ‘이중의 난민’이 된 저자를 보고 있으면 인간에게 고향이란 어떤 의미를 갖는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두 번째 책 <내 편이 없는 자, 이방인을 위한 사회학>을 읽으며 고향에 대해 생각해 볼까 해요.

<내 편이 없는 자, 이방인을 위한 사회학>

이방인, 인간 그 자체
책을 쓴 김광기 교수는 모든 인간이 이방인이라고 말해요. 저자의 기준으로 이방인은 물리적으로 떠나는 것 말고도 물리적, 인지적 시공간을 이동하는 모든 이를 뜻하거든요. 우리 모두 어느 측면에서는 이방인인 셈이에요.
다른 맥락, 다른 세상, 다른 환경, 다른 공간의 토박이에게 때로는 밀어냄을, 동시에 때로는 의외로 가뭄에 콩 나듯 드물게 환영을 받기도 하는 초짜가 내가 보는 이방인의 범주에 들어간다. (내 편이 없는 자, 이방인을 위한 사회학, p.52)
우린 토박이인 동시에 항상 이방인입니다.
한 번 이방인은 영원한 이방인
모든 이방인의 꿈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일 테죠.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해요. 고향은 떠나야만 생기는 것이고, 떠나지 않고서는 고향이 존재하지 않거든요.
무슨 뜻이냐면, 이방인이 고향에 돌아와도 이미 고향과 다른 시간을 살았기 때문에 토박이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거예요. 전쟁터에서 귀향한 퇴역 군인을 예로 들며, 그렇게 기다리던 고향에 돌아와서도 거리감을 느끼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설명하죠.
고향을 떠나도 이방인이며 고향에 돌아와도 이방인이다. 그는 고향에 돌아와도 그토록 찾고 싶어 하던 고향을 결코 찾지 못한다. 타지에서 생각만 하면 눈물로 베개를 적시게 했던, 그렇게 돌아가고 싶어 했던 과거의 고향은 더 이상 없다. (이방인을 위한 사회학, p.252)
비슷한 이야기가 첫 번째 책에서도 나오더라고요. 바르구티의 기억 속 고향이 사라진 이유는 오랜 시간이 흐르며 물리적으로 변한 탓도 있지만, 결정적으로는 그에게 고향의 의미가 변해버렸기 때문이에요. 저자가 고향에서 쫓겨나지 않았다면 그곳은 일상의 공간이지, 아픔의 상징이 아니었을 테니까요. 고향에서 일상을 영위한 지 오래된 바르구티는 고향에서도 토박이로 돌아갈 수 없어요. 그곳에는 그의 자리가 남아있지 않거든요.
이방인은 자기 자리라고 주장해 왔던 곳에서 이제 무엇을 할 것이며, 그 장소는 돌아온 이방인과 또 무엇을 함께할 것인가? (나는 라말라를 보았다, p.106)
나만의 고향
그렇다고 해서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채 항상 슬퍼하고 좌절하며 살아야 한다는 건 아니고요. 김광기 교수가 제시하는 이상적인 상태는, 자신이 이방인임을 받아들이고 계속 이방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이에요.
어차피 우리가 그리던 과거의 고향은 존재하지 않아요. 그렇다고 현재의 거처를 고향 삼을 수도 없고요. 과거 또는 현재에 안주하는 대신, 자신만의 고향을 찾아 계속 움직여야 한다고 해요. 아마 그 자신만의 고향도 영원히 찾을 수 없겠지만, 그렇게 영원히 나아가는 거죠.
세상을 완전히 타향으로 삼는 것, 세상에서 고향을 다시는 찾지 않는 것, 세상을 항상 낯설어 하는 것, 그것이 공부며, 그것이 철학 함이며, 그것이 바로 인간이 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생이 다하는 날까지 낯선 자의 위치에 놓는 것, 즉 이방인으로 남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간의 본성의 가장 핵심에 자신을 위치시키는 것이다. (p.256)
이렇게 마셔보세요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쉽게 쓰려 했다는 게 잘 느껴지는 책이에요. 재밌고 일상적인 표현이 많이 들어 있으니 편하게 읽어보세요.
나는 어떤 면에서 이방인인지, 동시에 어떤 면에서 토박이인지 생각하며 읽어보세요.
여섯 번째 해독레터, 어떻게 읽으셨나요? 연말 모임이 잦을 때라 사람을 많이 만나는 때이지만, 외려 그 점 때문에 더 외로움이 많이 느껴지는 때이기도 한 것 같아요. 특히 타지살이를 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런 마음이 많이 들기도 하겠네요. 혹시라도 외로움이 느껴지는 분이 있다면 자신만의 고향을 찾아 쌀쌀한 겨울 따뜻하게 보내시길 바라요. 해독레터에도 온기 가득 담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이제 핸드폰은 내려놓고,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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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하는 당신의 내일을 응원합니다.” @mhsjofficial
20231206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