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이것만 보고 핸드폰 내려놔야지’라고 생각 중인 당신

안녕하세요, 도파민 중독자, 앗 아니, 지난 9월부터 무형서재에 합류한 에디터 땅콩입니다. 구독자님은 오늘 하루 스마트폰을 얼마나 오래 보고 계셨나요? 저는… 음… 제 사회적 체면을 위해 여기까지 말하겠습니다...
도파민 중독이라는 말에 이어 도파민 디톡스라는 말까지 유행인 걸 보면 이건 저만의 문제가 아닌가 봐요. 하지만 마음먹는다고 쉽게 그만둘 수 있었다면 그건 중독이 아니겠지요.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줄이겠다 아무리 다짐해도 어느새 또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를 뒤적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딱히 뭘 하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있는 걸 보면 죄책감이 들고요, 이것 때문에 정말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거나 잠들 시간을 놓치면 그 죄책감은 두 배, 아니 열 배가 되는 것 같아요. 오늘 하루도 이렇게 보내버리다니..! 이럴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어요, 누가 내 도파민 디톡스를 도와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해독레터의 다짐: 폐간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그래서 준비한 해독레터입니다. 창간호부터 외쳐보는 다짐, “폐간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농담 아니고 정말로, 해독레터의 목표는 최대한 빠른 폐간이에요. 도파민 중독자가 없다면 해독레터도 필요하지 않을 테니까요. 우리는 한 분도 빠짐없이 모두가 도파민 중독에서 벗어나길 바라거든요. 도파민 해독레터가 필요 없어지는 그날까지, 도파민 해독레터를 보내드릴게요.
도파민 해독 주스, 숨 참고 원샷
해독레터에서는 해독 주스가 되어줄 책을 한 권 골라 소개할 거예요. 구독자님께 잘 맞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 성분표와 엑기스를 보내드릴게요. 단순한 책 설명보다는 무겁고, 기나긴 서평보다는 가벼운 이 엑기스로 미리 해독 주스를 맛보세요. 엑기스에는 해독 주스의 효과를 백 퍼센트 보게 도와줄 음용법까지 담겨 있답니다.
정정합니다, 원샷 말고 투샷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지속성이 가장 중요하겠죠. 그래서 해독레터는 해독 주스를 한 번에 두 권씩 추천할 거예요. 꼼꼼히 따져서 궁합이 좋은 주스로 가져올게요. 같이 먹을 때 더 맛있는 음식 조합이 있듯, 책도 같이 읽을 때 더 효과가 좋은 책들이 있거든요. 두 권의 해독 주스를 모두 마시고 2단계 디톡스를 완성해 보세요.
해독레터에서 소개할 첫 번째 해독 주스 또한 우리 해독레터의 취지와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어요. 자극에 중독되어 버린 현대 사회의 문제를 꼬집는 책이거든요. 이번 레터에서는 한병철 교수의 <서사의 위기>, 그리고 함께 읽으면 좋은 소설 <꿈을 파는 남자>를 소개할게요.
목차를 클릭하면 해당 위치로 바로 이동할 수 있어요.
이런 분께 효과적이에요
매운맛 콘텐츠에 질린 분
나만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은 분
이런 분께 효과적이에요
책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한 분
책의 미래가 걱정되는 분

스토리 중독의 시대를 사는 우리가 마주한 문제, <서사의 위기>

스토리는 더 이상 창작자 고유의 것이 아니죠. 기업이 물건을 팔 때는 물론이고, 취업을 위한 자기소개서를 쓸 때도, 심지어는 정치인이 유세할 때에도 스토리가 중요하다고 해요. 너도나도 스토리텔링을 하는 거죠. 이렇게 스토리텔링이 넘쳐나는 시대인데, 서사가 위기에 빠졌다니. 이게 대체 무슨 뜻일까요?
이야기는 뭐고, 스토리는 뭔데?
저자는 ‘이야기’와 ‘스토리’를 구분하며, 지금 우리 주변에 쉽게 볼 수 있는 것들은 이야기가 아닌 ‘스토리’라고 해요.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야기’인데 말이죠.
스토리와 이야기의 차이점은 바로 ‘서사’의 유무에서 드러납니다. 서사는 여러 사람의 경험이 쌓이고쌓여 만들어진 지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야기는 이 축적된 지식, 즉 서사를 가지는 반면, 스토리에는 서사가 없죠.
우리가 SNS에 빠지는 이유
이야기에는 새 시작의 힘이 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모든 행위는 이야기를 전제한다. (서사의 위기, p.137)
서사는 가능성과 방향성을 지니고 있어요. 지금 당장에 멈춰있는 단편적인 상태가 아니라,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졌고 또 현재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맥락을 가지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서사가 담긴 이야기가 있을 때, 미래를 꿈꾸고 희망할 수 있다고 해요.
스토리는 서사 대신 정보로 채워져 있어요. 정보는 맥락 없이 순간의 조각으로만 가득하죠. 겉보기에는 정보도 흥미로운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쉴 틈 없이 몰아치는 자극일 뿐이에요. 우리가 SNS에 중독되는 이유도 비슷하죠.
???: 서사가 밥 먹여 주나 ???: 꺼억
자극적인 정보로 가득 찬 스토리는 깊이 있는 생각과 이야기를 하는 데 방해물이 돼요. 하지만 맥락과 서사를 되찾는다면 어느새 놓쳤던 ‘나’의 고유한 이야기도 다시 얻을 수 있어요. 진정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비로소 진짜 나를 찾게 되거든요. 그러면 무의미하고 지루하게만 느껴지던 일상에서도 다시 재미를 느낄 수 있답니다.
이렇게 마셔보세요
주변에서 본 사례를 생각하며 읽으면 이해가 훨씬 수월할 거예요.
저자가 긍정적으로 보는 개념과 부정적으로 보는 개념을 구분해서 정리하며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디지털화된 후기 근대에 우리는 끊임없이 게시하고 ‘좋아요’를 누르고 공유하면서 벌거벗은, 공허해진 삶의 의미를 모르는 척한다. (서사의 위기, p.64)
서사의 위기가 가속화된 데에는 디지털화의 영향이 크다고 하는데요, 이 점 때문에 스토리와 이야기의 차이를 디지털 매체와 전통 매체의 차이로 착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책이라고 해서 모두 이야기를 담고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번에는 ‘이야기가 담기지 못한 책’에 관한 소설을 소개하려고 해요.

더 이상 책이 읽히지 않는 시대에 책을 파는 방법, <꿈을 파는 남자>

하쿠타 나오키의 소설 <꿈을 파는 남자>는 낭만적인 제목과는 달리 출판계의 현실을 꽤 잔인하게 보여주는 책이에요.
허영심과 자기만족을 위한 꿈, 책
이 책의 주인공 우시가와라는 작은 출판사의 편집부장인데, 꽤 독특한 방식으로 수익을 창출합니다.
허영투성이의 별 볼 일 없는 원고를 엄청난 명작이라며 치켜세우고는, 작가가 사비를 들여서라도 출판하도록 부추기죠. 실제로 출판에 필요한 비용을 몇 배로 부풀려서 돈을 받아내니, 출간된 책이 전혀 팔리지 않더라도 출판사에는 수익이 생기는 거예요.
사기와 다를 바 없는 행동이지만 우시가와라는 그저 고객의 허영심과 자기만족을 채우도록 도울 뿐이라고 말한답니다. 아무도 책에 관심을 갖지 않고 출판 시장이 점점 줄어드는 판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면서요.
왜 이렇게 책이 팔리지 않는 걸까요? 왜 이렇게 허영 가득한 책이 쏟아져 나오는 걸까요?
아무도 듣지 않는 이야기
“작가를 지망하는 사람이 늘어난 것은 블로그나 SNS의 보급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야. (…) 옛날에는 무대가 보는 것이었어. 하지만 지금은 모두들 무대에 직접 오르고 싶어 하지. 그러니 관객이 없을 수밖에.”(꿈을 파는 남자, p.181)
<서사의 위기>에서는 이야기로 만들어진 공동체를 ‘소통 없는 공동체’라고 말해요. 소란스럽지 않아도 서로 연결된 셈이죠. 하지만 이 공동체는 ‘공동체 없는 소통’에 밀려 빛을 잃어갑니다.
<꿈을 파는 남자> 속 허영투성이 책들과 출판 시장 규모의 감소세도 이 ‘공동체 없는 소통’의 결과물이에요. 떠드는 입은 늘어났지만 듣는 귀는 줄어들었죠. 이야기는 경청이 있어야 완성되는데 말이에요. 독자는 작가에게 귀 기울이지 않으니 책을 읽지 않고, 작가는 독자에게 귀 기울이지 않으니 자기만족만을 위한 책을 쓰게 돼요.
손이 가는 책, ‘진짜’ 이야기 만들기
그렇다면 어떤 책을 써야 독자들이 관심을 가질까요? <꿈을 파는 남자>에서 우시가와라는 거의 모든 작가와 글을 비웃지만, 단 하나의 글만은 진심으로 인정하고 출판사에서 전액을 부담하는 출간까지 마음먹어요. 아마 텅 빈 스토리가 아닌 진짜 이야기이기 때문이겠죠.
이 글이 어떤 이야기인지는 책을 읽으면 알게 될 거예요. 이대로 끝내기에는 아쉬우니까, <서사의 위기>에 나오는 문장으로 그 이야기에 대한 힌트를 드리면서 이번 해독레터를 마무리하도록 할게요.
“모든 슬픔은 이야기에 담거나 이야기로 해낼 수 있다면 견딜 수 있다. 이야기 판타지는 치유적이다. (…) 슬픔은 정신적인 막힘으로 굳어지는 대신 이야기의 물결에 녹아들어 액화된다. (서사의 위기, p.116)
이렇게 마셔보세요
내가 출간 제안을 받은 작가라면 어떻게 할지 생각해 보며 읽으면 더 흥미진진해요.
우시가와라의 생각에 공감, 혹은 반박하며 읽는다면 내 감상을 정리하기 편해요.
첫 번째 해독레터, 어떻게 읽으셨나요? 주스 한 번 마셨다고 그간 쌓인 도파민 해독이 다 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죄책감 해독은 되었길 바라요. 오늘 저녁은 이 레터를 읽은 것만으로도 어제보다 조금 더 건강한 하루를 보냈다는 기분과 함께 맘 편히 잠드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이제 핸드폰은 내려놓고, 안녕!
지난 해독레터 모아보기 해독레터
“독서하는 당신의 내일을 응원합니다.”
20231101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