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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 표류기 vs 독서모임 표류기

안녕하세요, 에디터 땅콩입니다! 이번 해독레터에서는 재밌는 고전 문학을 소개하려고 해요. 다양한 분야의 책을 추천하려고 고민을 많이 하는데요, 달에 한 번쯤은 고전을 다루려고 벼르고 있었거든요. 그러다가 벌써 11월 마지막 레터의 순서가 되었길래, 부랴부랴 노벨문학상 수상작 하나를 골라 들고 달려왔습니다.
어렸을 때 모두들 꿈꾸는 로망 중에는 무인도에서 살아남기가 있죠. …아니라고요? 맞을 텐데요..? 정말 아닌가요? 어쨌든, 그런 로망을 가지지 않았어도 방송이나 책에서 이런 질문을 들어보셨을 거예요, “무인도에 딱 세 가지만 가져갈 수 있다면 무엇을 가져가실 건가요?”
저는 이번 레터에서 보여드릴 첫 번째 책을 읽고 답을 정했습니다. 안경, 그리고 소라껍데기를 챙기고요, 가장 중요하게는… 제 인간성을 잘 챙겨가려고 합니다. 무슨 뜻이냐고요? 오늘 해독레터에서 보여드릴 책 <파리대왕>을 읽으면 무슨 뜻인지 아실 거예요. 그리고 두 번째 책으로는 서현숙 작가의 수필 <소년을 읽다>를 가져왔어요.
해독레터를 처음 읽는 분들께 드리는 쪽지 - 해독레터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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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해독 주스 성분표
#고전문학 #인간성 #야만성
이런 분께 효과적이에요
특수 상황에서 개인마다 다양한 반응을 보여주는 군상극을 좋아하는 분
인간 본성에 관해 고민하는 분
이런 분께 효과적이에요
열악한 환경에서의 독서모임이 궁금한 분
독서가 가져오는 사소한 변화를 알고 싶은 분

법과 질서가 사라진 곳에서 인간은, <파리대왕>

무인도에 떨어진 아이들
소설의 등장인물은 무인도에 불시착한 25명의 소년이에요. 전쟁을 피해 날아가던 비행기가 추락하며 아이들만 살아남은 거죠. 다 함께 살아남기 위해서 소년들은 회의를 진행하고 통솔자를 뽑으며 나름대로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문명과는 동떨어진 상황에 부닥쳐 버린 이 아이들이 끝까지 문명인의 모습을 지켜낼 수 있을까요?
문명을 잃은 이들에게 찾아올 변화
예상하셨겠지만, 상황은 그다지 긍정적으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통솔자로 뽑힌 랠프, 그리고 사냥부대를 이끄는 잭의 갈등이 점점 심해지고 결국 그 둘을 중심으로 파벌이 나뉘어요.
결정적인 충돌은 소년들이 열심히 피운 불씨가 꺼지면서 발생해요. 불씨가 꺼지지 않게 지키는 일을 맡은 잭과 그의 일당이 불을 돌보는 대신 사냥을 나가버리면서 말이죠. 소년들에게 불은 정말 중요한 존재인데요, 당장의 생존에 필요한 것이기도 하지만, 연기로 구조 요청을 보낼 유일한 수단이기도 하거든요. 문명의 상징이자 문명으로 돌아갈 기회인 불 대신, 붉은 피를 흘리는 사냥을 선택한 거예요.
출처: 영화 <파리대왕>(1963)
쌍둥이 형제는 여전히 같이 웃음을 나누면서 뛰어오르고 둘이서 뱅뱅 돌았다. 나머지 소년들도 여기에 합세하여 돼지 멱 따는 소리를 냈다. (…) 사냥부대도 여전히 뱅뱅 돌면서 그를 치는 시늉을 했다. 춤을 추며 그들은 노래를 불렀다. ”멧돼지를 죽여라! 목을 따라! 때려 잡아라!” (파리대왕, p.110)
인간의 본성
책의 결말을 향할수록 소년들의 행동은 극단적으로 치닫습니다. 문제가 있는 아이들만 이 무인도에 떨어진 것도 아니고, 여기에 무슨 악의 판도라 상자가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에요. 평범한 아이들이 모인 평범한 무인도일 뿐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요?
“짐승을 사냥해서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가소롭기 짝이 없구나” 하고 멧돼지 머리가 말했다. (…) “너도 알지? 나는 너희들의 일부분이야. 아주 밀접하게 가까이 있는 일부분이야. 왜 모든 것이 그릇되게 돌아가고 모든 일이 현재의 이 모양으로 되었는가 하면, 그건 모두 나 때문이야.” (파리대왕, p.218)
저자는 결국 인간의 내부에 잔인한 본성이 도사리고 있다고 말하고 있어요. 지금은 사회의 규칙과 제도 아래 맞춰 행동하고 그게 우리의 타고난 본성인 양 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사회가 만들어 놓은 틀에서 벗어나기만 한다면 그 누구라도 이렇게 행동할 수 있는 거죠. 문제의 도화선은 항상 우리 안에 있으니까요.
이렇게 마셔보세요
비슷한 상황에 어른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혹은 어른들만 있었다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지 상상하는 것도 재밌어요.
책의 결말 이후, 아이들의 삶에는 어떤 변화가 찾아올까요?
<파리대왕>에서는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소년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과정을 보게 될 텐데요. 이번에는 정반대로, 문제가 될 거라고 확신했던 소년들이 독서를 경험하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책 <소년을 읽다>를 보여드릴게요.

소년원생들과의 독서모임, <소년을 읽다>

철창 너머의 교실
<소년을 읽다>는 국어 교사인 저자가 소년원생들과 1년간 국어수업을 하며 쓴 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책이에요. 이 국어수업은 글과 익숙하지 않은 학생이 대상인 만큼 가벼운 독서모임 같은 형태로 이뤄지는데요, 소년원에 들어간 학생들에게 국어를 가르치고 책을 읽히다니 상상이 잘 가지 않죠.
저자 또한 불편한 마음을 안고 첫 수업에 들어갔어요. 심지어 수업 전날 밤에는 악몽을 꾸었다고도 하고요. 과연 소년원의 국어 교실에는 어떤 아이들이 앉아 있을지, 그 아이들과는 어떻게 수업을 할 수 있을지, 복잡한 생각과 함께 시작한 한 해의 이야기가 이 책에 온전히 담겨 있답니다.
소년과 소년원
이 책에 대한 설명을 듣고, 소년원생들과의 독서모임이 원활하고 즐겁게 이뤄졌을 것이라고 예상한 분은 많지 않을 것 같아요. 직접 수업을 맡은 저자 또한 그랬고, 심지어는 수업을 여러 차례 진행하고 학생들과 정을 쌓으면서도 학생들을 향한 경계심을 쉽게 내려놓지 못합니다.
걱정처럼 엉망으로 굴러가는 수업도 있지만, 다행히도 그런 날만 있는 건 아니에요. 수업에서 책 읽는 방법을 배우기 시작한 학생들은 숙제가 아닌데도 책을 모두 읽어 오고, 국어 수업이 있는 날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심지어는 국어 수업을 더 이상 듣지 않는 학생들도 선생님을 보러 교실에 찾아오기도 해요. 열정적이고, 어떨 때는 순진하기까지 한 예상외의 모습을 만나며 저자는 소년들을 향한 편견을 점점 내려놓아요.
나는 추상적 존재가 아닌 현실에 존재하는 소년을 만났다. 소년은 타인에게 고통을 가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면서 동시에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삶의 맥락을 지닌 존재였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말이다. (소년을 읽다, p.13)
‘소년’이라는 단어가 우리에게 주는 느낌은 무엇이 있나요? 풋풋하고 밝은, 색으로 따지자면 연두색과 비슷한 느낌이겠지요. 하지만 이 연둣빛 소년에 ‘원’ 자 하나 붙었을 뿐인데 소년원은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 단어로 변해요. 단어의 한자만 보면 소년들의 집이라는 뜻이어야 할 텐데, 실제로는 소년들을 소년으로 볼 수 없게 만드는 집이 되는 것 같네요.
성장할 기회
첫 번째 책 <파리대왕>에서, 평범한 아이들이 무인도에 떨어지고 의외의 성향을 드러내죠. 그런 것처럼 소년원에 온 소년들도 자기만의 무인도에 떨어졌던 것은 아닐까요. 아이라면 응당 받아야 할 관심의 사각지대에 놓여 혼자 남는 바람에 사회에서 이탈해 버린 건 아닐까요.
그들에게 죄가 없다는 것도 아니고, 모든 아이들에게 개선의 여지가 있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에요. 하지만 다시 소년이 될 기회는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소년이 될 기회를 잃는 것은 성장할 기회를 잃는 것이기도 하거든요.
소리 내 책 읽기조차 어려워하는 학생을 배려해 저자가 먼저 읽기를 시작하려 하자, 학생은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말해요.
“제가 먼저 읽을래요. 저 읽는 연습 해야 해요. 너무 더듬거려서요.” (소년을 읽다, p.204)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그 부분을 메꾸기 위해 노력해야겠죠. 소년들이 가진 부족한 점이 영원히 채워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노력하는 척이라도 한 번 해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사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마셔보세요
무엇이 옳거나 그르다기보다도, 그냥 학생들을 두려워하기도 하고 예뻐하기도 하는 저자의 마음에 공감하며 읽어보세요.
꼭 소년원의 학생들에게만이 아니라 모두에게 해당하는 독서와 독서모임의 효과를 찾으며 읽어보세요.
다섯 번째 해독레터, 어떻게 읽으셨나요? 이번에는 소설 한 권과 수필 한 권을 같이 실었어요. 1호에도 비문학과 문학을 함께 실었는데, 그 연결점이 재밌으셨다는 구독자님의 답장을 받았거든요. 그래서 이번에도 다양한 장르의 책을 이어보려고 해봤습니다. 다양한 해독주스를 마시다 보면 구독자님의 취향을 찾기도 더 쉬울 테니까요.
해독레터는 항상 구독자님의 소소한 취향을 궁금해하고 있어요. 다루면 좋을 주제나 책이 떠올랐다거나, 이번 레터에서 좋거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언제든지 아래 설문으로 답장을 보내주세요! 그럼 이제 핸드폰은 내려놓고,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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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하는 당신의 내일을 응원합니다.” @mhsjofficial
20231129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