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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파묻힌 아이들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출처: 진실화해위
안녕하세요, 에디터 땅콩입니다. 지난달에는 안타까운 진실이 또 하나 세상 밖으로 나왔죠.
1900년대의 소년 감화원이었던 선감학원에서 200점이 넘는 아동 유해가 발굴되었다고 해요. 선감학원의 아동 인권 침해 사건은 이전부터 지적되어 왔지만, 이렇게 많은 유해와 유품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유난히 가슴 아프게 다가오더라고요.
선감학원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떠오른 책이 한 권 있었는데요, 2020 퓰리처상 수상작이기도 한 <니클의 소년들>이에요. 저자 콜슨 화이트헤드는 미국의 한 남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모티브로, 억울하게 죽어 나가야 했던 어린 목숨과 그것을 방관했던 사회를 이야기하거든요.
마찬가지로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또 다른 소설, <사라진 소녀들의 숲>도 함께 보여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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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분께 효과적이에요
몰입감 있는 묘사에 빠지고 싶은 분
슬프지만 필요한 이야기를 듣고 싶은 분
이런 분께 효과적이에요
복잡미묘한 자매 관계를 지켜보고 싶은 분
얽히고설킨 실마리 풀기를 즐기는 분

소년들과 함께 파묻힌 진실, <니클의 소년들>

대학 새내기에서 소년원 새내기가 된 아이
주인공 엘우드는 아주 모범적이고 똑똑한 소년이에요. 그래서 어려운 가정 환경에도 불구하고 대학에 진학할 기회를 얻죠. 즐거운 캠퍼스 생활을 상상하며 들뜬 마음으로 길을 나서지만, 엘우드는 대학에 도착하지 못합니다. 엉터리 누명을 쓰고 니클이라는 이름의 소년 감화원에 들어가게 되거든요.
얼룩덜룩 멍, 아니 알록달록 아이스크림 공장
니클은 이해할 수 없는 일투성이에요. 열악한 환경, 아주 낮은 수준의 교육, 말도 안 되게 가혹한 처벌.
그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것은 ‘아이스크림 공장’입니다. 그곳에서 교화라는 이유로 두들겨 맞고 나면 얼룩덜룩하게 생기는 멍이 알록달록한 색깔의 아이스크림 같다며 이런 이름이 붙었어요. 아이스크림 공장의 공식 명칭은 화이트하우스, 백악관이에요. 니클의 아이들에게는 진짜 대통령의 관저만큼이나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곳이죠.
채찍이 한 번 휘둘러질 때마다 매트리스의 스프링이 삐걱거렸다. 엘우드는 침대에 단단히 매달려 베개를 악물었지만, 매질이 끝나기 전에 기절했다. 그래서 나중에 사람들이 그에게 몇 대나 맞았느냐고 물었을 때 대답할 수 없었다. (니클의 소년들, p.92)
싸움을 말렸을 뿐인데도 기절할 때까지 매를 맞아야 했던 엘우드. 이런 일이 수없이 반복되고, 상황을 개선하려던 노력이 수없이 무산되며,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생각한 엘우드는 결국 탈출을 감행합니다.
“근데 너는 왜 같이 가는 거야?” ”네 놈이 멍청하니까 금방 잡힐 것 같아서 그런다, 왜.” ”아무도 데려가지 말라며. 도망칠 때는.” ”너는 멍청하고, 나는 바보니까.” (니클의 소년들, p.247)
어른이 되지 못한 아이들
<니클의 소년들>은 주로 니클의 수감생이던 과거를 다루지만, 짧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는 니클의 만행이 모두 밝혀지고 공론화된 현재의 시점이에요. 건물 부지에서 마흔세 구의 시체가 나온 후의 이야기죠.
그런 자리(동창회)에 나가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제 다들 자라서 어른이 되었는데. (니클의 소년들, p.15)
이제 와서 진실이 파헤쳐지는 것에 대해, 누군가는 회의를 느끼기도 합니다. 이미 다들 어른이 되었는데 무슨 소용이냐면서 말이에요. 하지만, 이 아이들이 정말 다들 자라서 어른이 되었을까요?
억울함을 알리지도 못한 채 땅속에 파묻힌 아이들은 물론이고, 니클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온 아이들조차도 그 그림자에 갇혀 있어요. 니클의 소년들은 아직도 니클에서 달아나지 못하고, 소년에서 자라지 못했습니다. 몇십 년이 흐른 후에도 여전히 니클의 소년으로 남은 거죠. 해묵은 진실이 세상에 드러난 뒤에야 그들도 비로소 성장할 수 있을 거예요.
이렇게 마셔보세요
분량은 적어도 호흡이 긴 소설이니 시간을 들여 찬찬히 읽어보세요.
끝까지 다 읽고 난 후에 표지를 다시 본다면 숨어있는 의미가 보인답니다.
<니클의 소년들>은 잊어서는 안 되는, 꼭 해야만 하는 이야기를 하지만 그래서 더 아프고 슬픈 소설이기도 하죠. 그래서 이번에는 좀 더 희망찬 이야기를 들려드리기 위해서, <사라진 소녀들의 숲>을 소개하려고 해요.

조선의 제주도에서 사라진 열세 명의 아이들, <사라진 소녀들의 숲>

조선판 ‘에놀라 홈즈’, 환이를 만나보세요
<에놀라 홈즈>를 아시나요? 셜록 홈즈의 여동생 에놀라가 탐정으로 활약하는 영화인데요, 천선란 소설가는 이 책을 읽으며 에놀라를 떠올렸다고 해요. 이 책의 주인공 환이도 자신만의 방법으로 사건을 쫓는, 소녀 탐정이거든요. 그것도 조선 시대의!
사라진 소녀들을 찾아 나서는 소녀들
장장 스무 해 동안 범죄 사건을 수사하며 내가 해결하지 못한 사건은 없었다. 단 하나, 숲 사건을 제외하면. (…) 현장을 목격했을 가능성이 있는 이는 둘이었다. 민환이와 민매월 자매. 내 딸들. (사라진 소녀들의 숲, p.15)
환이는 뛰어난 수사관이었던 아버지의 실종 사건을 파헤치기 위해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조사하던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합니다. 제주도에서 소녀들이 줄지어 사라진 일이 있었거든요.
단서를 따라 움직이던 환이는 사이가 소원했던 동생 매월이와도 다시 만나요. 그리고 함께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나갑니다.
“진실을 알고 싶어? 아무리 끔찍하다 해도?” 매월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그럼.” (사라진 소녀들의 숲, p.216)
사건의 피해자도 소녀인데 사건을 수사하는 사람도 소녀라니, 이대로 괜찮은 걸까요? 하지만 너무 걱정 마세요. 책장을 넘기며 이들의 행적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이 자매를 믿을 수밖에 없거든요.
한국계 캐나다인이 보듬는 조선의 흉터
역사와 문학을 전공한 허주은 작가는 고려시대부터 이어져 조선시대까지 남았던 공녀 제도를 모티브로 이 책을 썼다고 해요. 책의 중심이 되는 사건은 환이네 가족의 상처이기도 하지만, 그 당시에 딸 혹은 누이를 잃었을 또 다른 가족들의 흉터이기도 하죠. 그 흉터가 조금이라도 더 옅어질 수 있게 하는 것이 이 소설인 것 같아요.
저자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대부분 캐나다에서 생활했는데, 그 때문인지 주연들의 감정 전개가 독특하게 느껴지기도 한답니다. 여느 사극 드라마나 역사 소설의 주인공과는 확실히 다른 면모가 보여요. 이런 점 때문에 역사 소설이 익숙지 않은 독자들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네요.
이렇게 마셔보세요
흡입력 있고 전개가 빠른 책이라 후루룩 읽기 좋아요.
여러 인물 간의 관계, 그리고 그에 따른 동기를 생각하며 읽으면 인물들이 더 잘 이해돼요.
두 번째 해독레터, 어떻게 읽으셨나요? 두 번째 레터는 좀 어두운 주제이긴 하지만, 그래도 지난 레터보다 더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소설들로 준비해 봤어요. 매주 수요일 8시마다 찾아올 이 레터의 도움으로 오늘 하루의 도파민을 해독하실 수 있으면 좋겠네요. 물론 더 좋은 건 추천해드린 해독주스를 읽는 것이겠죠? 자기 직전에 핸드폰을 멀리하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이제 핸드폰은 내려놓고,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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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08 발행